헌법재판소는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사건을 기각하면서도 한 총리 측과 여권이 주장했던 국회의 의결 정족수 문제와 관련해 '국무총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명 재판관이 '대통령'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각하 의견을 냈으나, 3분의 2가 넘는 재판관이 '민주적 정당성'을 이유로 절차적으로 적법하다고 봤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고 권한대행을 맡은 이후 약 2주만인 지난해 12월27일 탄핵 소추됐다.
국회는 한 총리 탄핵소추안을 재적 의원 300명 중 192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92표로 통과시켰으나, 여권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만큼 대통령 탄핵소추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 총리 탄핵안 의결 정족수가 총리 탄핵과 같은 '재적의원 300명 중 151명 찬성'이라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대통령 기준인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200석)'이라고 맞섰다.
국민의힘은 한 총리 탄핵안이 접수된 당일 헌재에 이 쟁점과 관련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헌재는 "대통령 탄핵소추에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가중 의결정족수를 요구한 취지는 대통령은 국가원수인 동시에 행정부 수반으로 대통령이 갖는 민주적 정당성의 비중, 헌법상 지위 및 권한의 중요성 등을 고려해 탄핵소추가 신중하게 행사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궐위나 사고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대통령직의 승계가 아니라 대행이 이루어지도록 규정한 이유도 해당 공권력 주체가 행사하는 권한의 크기는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에 상응해야 한다고 이해되는 민주적 정당성의 원리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직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탄핵 대상자처럼 재적의원 과반수 의결로 충분하다는 게 취지다.

특히 헌재는 '권한대행'이라는 공직이나 지위가 새롭게 창설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도 결정문에 명시했다.
헌재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과 법령상으로 대행자에게 예정된 기능과 과업의 수행을 의미하는 것이지 '권한대행' 또는 '권한대행자'라는 공직이나 지위가 새로이 창설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면서 "피청구인이 국무총리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이지, 국무총리와 권한대행이 별개의 지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한편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권한대행도 대통령에 준하는 지위에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절차적 하자로 탄핵심판 청구가 각하돼야 한다고 봤다.
이들 두 재판관은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궐위·사고라는 비상 상황에서 직무의 공백 및 국가적 기능장애 상태 방지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라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자의 지위는 '대통령에 준하는 지위'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명시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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