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 속도 시간당 8.2㎞ ‘사상 초유’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규모 넘어
신라 고찰 대전사 턱밑까지 불길
주요 문화재 방염포로 감싸 대비
안동 등 특별재난지역 추가 선포
전북 무주 등 전국서 산불 잇따라
21일 경남 산청,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영남권 산불이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서울의 절반이 넘는 면적이 불에 탔다.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기록을 갈아 치운 역대 최악의 산불이다.
2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기준 전국의 중대형 산불 영향 구역은 3만6000여㏊이다.
서울 면적(약 6만50㏊)의 과반,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2만3794㏊의 1.5배에 달한다.
경북 영덕에서 실종됐던 산불감시원 A(69)씨가 이날 숨진 채 발견되면서 사망자는 27명으로 늘었다.
영남권 산불이 일주일째 확산하면서 대한민국 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과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신라시대 고찰인 대전사 등을 지키기 위한 사투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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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경북 의성군 기룡산 일대 수목이 산불 피해를 입어 잿더미로 변해있다. 뉴시스 |
이날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지만, 워낙 적은 양이라서 불길을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다만 대기 중에 수증기가 늘어나면서 불똥이 날아가 산불이 번지는 ‘비화’(飛火) 현상 억제에는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산불의 기세가 여전히 강한 경북에는 이날 5㎜ 미만의 비가 내렸다.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산불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서도 1∼4㎜ 수준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원명수 국립산림과학원 국가산림위성정보활용센터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위성정보 등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순간 초속 27m의 강풍이 불면서 사상 초유의 확산 속도를 보이고 있다”며 “지난 25일 오후 경북 안동 부근에서 직선거리로 51㎞의 영덕 강구항까지 시간당 8.2㎞ 속도로 12시간 안에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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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압 구조의 영향으로 그동안 산불을 확산시켰던 강풍이 남서풍에서 북서풍으로 바뀌게 된다.
바람 방향이 바뀌면서 산불의 확산 방향도 달라질 전망이다.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오늘 내리는 비의 양과 비가 내린 후 바람이 불어오는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이 유동적”이라면서 “화세가 다소 누그러진 골든타임에 진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1호 국립공원·천년고찰만은’… 밤샘 사투
경남 산림당국은 26일 밤부터 산청 지리산국립공원에 공중진화대와 특수진화대 120여명 및 소방 헬기 29대, 군 헬기 8대를 투입해 산불 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 산세가 워낙 험해 진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내 산불로 인한 피해면적도 10ha에서 30~40ha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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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소방당국이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불로부터 대전사를 지키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방염포를 설치했다. 사진은 대전사 범종. 뉴시스 |
대전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된 사찰로, 보물 제1570호 보광전 등 여러 문화재가 보관돼 있다.
불길은 이날 오전 2∼3시쯤 강한 바람을 타고 대전사와 직선거리로 약 4㎞ 떨어진 곳까지 번졌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투입된 소방대원들의 밤샘 사투 등으로 불길은 잦아들었지만, 주왕산에 불에 타기 쉬운 소나무 숲이 널찍이 자리하고 있어 소방당국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다.
울산 울주 대운산 산불은 전날 오후 남하해 부산 기장군 장안사에서 직선거리로 2㎞ 정도까지 확산했다.
기장군은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리고, 장안사 내 국가유산을 부산시립박물관 등으로 옮겼다.
기장군은 울주 산불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북 무주군 부남면에서도 전날 오후 9시22분 산불이 발생해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불은 인근 적상사 야산과 부남면 소재지 부근까지 번져 산림 30㏊와 주택 3채가 전소하는 피해가 났다.
인근 주민 220여명은 면사무소 등으로 대피했다.
산림당국은 이날 오전 10시를 기해 산불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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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가는 대원들 27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에 있는 ‘천년 고찰’ 대전사 경내에서 119 산불특수대응단 대원들이 주왕산국립공원까지 뻗친 산불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청송=뉴스1 |
일주일 가까이 산불이 이어지면서 진화대원들의 피로도는 계속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건조한 날씨와 바람 탓에 불을 끈 곳에서 다시 불이 붙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진화율도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
울주 산불의 경우 전날 한때 진화율이 98%까지 올라갔지만, 낮 12시 기준 81%로 떨어졌다.
울주 산불 진화현장에 동원된 울산시 소속 50대 최모씨는 “3일째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평소 등산을 즐기는 편인데도 산이 가파르고, 끄고 돌아서면 다시 불이 붙어있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지치고 힘이 빠진다”고 전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경북 안동시, 청송·영양·영덕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번 산불은 인명 피해뿐 아니라 주택 등 생활 기반 시설 피해가 많은 만큼 조속한 피해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이재민 분들의 불편 해소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산청·울주·의성·하동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울산·하동·의성·대전=이보람·강승우·배소영·강은선 기자, 박진영·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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