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2배 증가한 염증성 장질환
유아기 항생제 노출, 패스트푸드·초가공식품을 피해야
“염증성 장질환은 국내에서 몇 년 전까지 ‘희소·난치질환’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새 환자가 급증하면서 ‘희소’라는 단어는 빠지고 있습니다.
최근 연예인 투병 고백 등을 통해 인식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복통으로 실려 왔다가 장에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해 수술 중 크론병 진단을 받는 사례가 많아요. 염증성 장질환은 진행성 질환으로 혈변 등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심해진 상황인 만큼 염증을 조기에 발견해 질병의 진행을 막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이창균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지난 3일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급증하고 있는 염증성 장질환 증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염증성 장질환은 위장관에 만성 염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발병 후에는 증상이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며, ‘완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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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균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은 주로 젊은층에서 발병하는데 나이가 어리다 보니 치료에 소홀한 경우가 있다”며 “질병 방치로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 8∼10년 지나 대장암 발병률이 올라간다”고 경고했다. 그는 “염증성 장질환은 발병 초기부터 꾸준한 치료로 염증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경희대병원 제공 |
두 질환은 질환의 침범 범위와 발생 연령, 합병증 등에서 구분된다.
궤양성 대장염이 주로 대장에만 염증이 생기는 반면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어디에나 생길 수 있다.
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 1만6728명이던 크론병 환자 수는 2023년 3만3238명으로 2배가 됐다.
궤양성 대장염 역시 같은 기간 3만2865명에서 5만9427명으로 80.8% 증가했다.
이 중 크론병은 10∼30대 비율이 60%가 넘는다.
20∼30대 발병은 염증성 장질환의 질병적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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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양성 대장염 역시 20∼30대에 정점을 찍는 것은 유사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은 궤양성 대장염은 50∼60대에 다시 한 번 피크(peak)가 나타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년 이후 궤양성 대장염 발병이 증가하는 점은 국내만의 특징인데 아직 그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염증성 장질환 환자는 대부분 복통과 묽은 변, 혈변 등으로 병원을 방문한다.
염증과 궤양이 반복되면 출혈, 장천공 등이 생길 수 있다.
장이 좁아지며 소화·흡수에 문제가 생겨 체중이 급격하게 빠지기도 한다.
염증성 장질환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유전적·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외 연구에서 환자 5~10%에서 가족력이 있었고, 국내 연구에서도 형제·자매 등 가까운 친족 중 염증성 장질환 환자가 있으면 발생 위험이 크론병은 20배, 궤양성 대장염은 10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유전적 영향이 분명 작용한다.
환경적 요인으로는 정제당과 지방산, 패스트 푸드(즉석 음식), 육류 섭취 등 서구화된 식습관과 대기 오염 등이 손꼽힌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서구 국가에서 많이 발생하던 염증성 장질환이 한국 등 산업화를 거친 나라에서 급증하는 등 ‘산업화 지역’에서 발생률이 높다.
‘항생제 노출’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 교수가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 자료를 바탕으로 2004∼2018년 6만8633명의 염증성 장질환 환자를 일반인과 비교한 결과, 항생제 노출 여부에 따라 염증성 장질환 발병 위험이 약 1.35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세 이하 영아기 항생제 노출 시 염증성 장질환 발병 위험이 1.5배 높았다.
이 교수는 “출생 후 1~2년까지 장 내 미생물 다양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정상적인 면역 체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이 시기에 항생제에 노출되면 장 다양성을 교란해 향후 염증성 장질환 발생을 높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성인에서도 소아에서만큼은 아니라도 25% 발병률이 높아진 것으로 나왔다”며 “항생제의 영향은 해외 다양한 연구에서 공통으로 나오고 있어 염증성 장질환과의 관련성이 확립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염증성 장질환 발병의 또 다른 원인으로 조명받는 게 ‘초가공식품’이다.
많은 연구를 통해 초가공식품 역시 장 내 미생물 균형을 깨뜨리고 염증을 일으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다양한 첨가제와 방부제를 포함한 과자, 시리얼, 케이크 등이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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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양성 대장염 환자의 대장암 발생 위험은 일반인보다 2.4배 높다.
국내 연구에서는 궤양성 대장염 진단 후 10년째 0.3%, 20년째 3.4%, 30년째 9.4%의 누적 대장암 발생률이 보고됐다.
다행인 것은 TNF(종양괴사인자) 억제제를 비롯한 생물학적 제제와 소분자제제가 개발 이후 염증성 장질환의 예후가 좋아졌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1999년 생물학적 제제가 도입된 이후 염증성 장질환에서 장기 생존율은 높아지고 입원율과 수술률은 낮아졌다”며 “염증성 장질환은 조기 진단 후 초기에 면역 억제 치료를 잘한 경우 예후가 좋고, 완치의 개념이 없는 질병인 만큼 평생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