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전쟁과 전염병, 심각한 기후 재난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른바 '준비된 시민'으로 불리는 이들은 준비에 필요한 도구와 교육을 제공하는 민간 기업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점차 세를 키우고 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러한 '준비된 시민(prepared citizens)'들이 과거 비주류로 취급되던 것과 달리 이제 주류에 편입되고 있으며, 이들의 활동으로 극우 단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총기 소유에 대한 인식 또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플로리다 중부의 참나무 그늘에 위장복을 입은 남성과 AR-15 소총 탄약을 가득 채운 조끼를 입은 남성 열 명이 모였다.
이들은 특수작전부대와 정예 법집행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격 전술을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공군 출신인 강사 크리스토퍼 에릭 로셔(35)가 자신을 소개한 뒤, 그룹과 함께 기도했다.
"주님, 당신께서는 그들을 자산으로 사용하시고, 이들이 이 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보호자가 되게 해 주소서"
이날 모인 사람들은 군인도, 경찰관도, 극우 민병대원도 아니었다.
이들은 조종사 두 명, 간호사 한 명, 건설 회사 임원 한 명을 포함한 민간인이었다.
수업 명칭인 '완전 도전자 민병대(Full Contender Minuteman)'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민간인 출신 군인들을 지칭하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플로리다주의 한 건설사 임원인 조시 에퍼트는 훈련에 참여한 평범한 신입생이다.
AR-15 소총에 근거리 조준경, 소음기, 적외선 레이저 등을 장착하고 훈련을 받은 그는 "람보가 되겠다는 환상 같은 건 없다"라며 "다만 코로나 대확산, 허리케인 등 위협 속에서 자력 방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명하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훈련을 주관한 업체는 '총부리와 손도끼(Barrel and Hatchet)'다.
2020년 이 업체를 세운 로셔(35)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당시 수많은 민간인이 자신들을 지킬 힘도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이러한 훈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준비된 시민들'은 총기 훈련과 함께 통신·의료 처치, 야간 사격, 드론 정찰, 주택 농장 등으로 훈련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로셔는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어둠의 장이 다가오기 전에 기억해야 할 것들'이라는 제목의 영상 등을 올리고 마약 카르텔이나 테러리스트 등의 공격부터 경기 침체 등 사회적 위험 요소가 다가왔을 때 대처법 등을 알리고 있다.
전직 육군 장교인 벤 스팽글러는 2023년부터 인스타그램에 순찰, 매복 및 관측소 설치와 같은 군사 보병 전술을 설명하는 짧은 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가 올리는 영상은 수십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준비된 시민 사회'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스팽글러는 또 인터넷을 통해 지도, 항법 지점 표시용 각도기, 나침반과 현장 안내서가 포함된 훈련 키트를 판매하고 있다.
NYT는 '준비된 시민들'이 도구와 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점차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오픈 소스 디펜스(Open Source Defense)'도 그중 하나다.
이 회사의 공동 창립자인 카림 샤야는 "5년 또는 10년 전에는 이 분야에 스타트업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민간 방위 및 이를 위한 도구를 확대하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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