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계약서
1. 증여재산
OO회사 지분 49%
2. 부담의무
①매달 용돈으로 100만원 이상 지급할 것
②한 달에 한 번 이상 방문할 것
③부모 생일에는 식사를 함께할 것
④동생에게 양보하며 항상 사이좋게 지낼 것
3. 증여계약 해제
상기 조건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증여재산을 즉시 반환한다.
지역의 한 중소기업 대표인 A씨는 2020년 11월 첫째 아들과 이런 내용의 ‘효도계약서’를 작성했다.
매달 용돈 지급과 정기적인 방문, 생일에 함께 하기 같은 ‘효’를 다하는 조건으로 2억원 넘는 회사 지분을 증여하는 내용이었다.
아들은 이런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A씨는 결국 계약서 작성 약 1년 뒤 아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아들이 ‘계약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계약이 해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설립한 이후 자신과 아내, 아들 등 가족에게 명의를 신탁해 주식을 갖고 있었으니 이 사건 주식 역시 자신이 실질적인 소유자라고도 했다.
효도 안 한 아들…법원은 “증여 아니다”1심은 그러나 아들 손을 들어줬다.
아들이 가진 이 회사 주식은 ‘효도계약’을 통한 증여가 아니라 출자금 납입과 주식 양수로 취득한 것으로 본 것이다.
A씨가 항소했지만 2심 판단도 같았다.
A씨가 회사를 설립할 때 아들이 출자금을 납입해 주식을 배정받은 점, 이후 주식 보유상황이 변동이 있을 때마다 주주간 주식양도계약을 체결한 점을 들어 이 사건 주식이 증여로 이뤄진 게 아니라고 봤다.
A씨는 다시 불복하며 상고했고 대법원은 최근 이 사건 심리에 착수했다.
A씨 사건처럼 재산을 물려받는 대가로 자녀가 부모 봉양 의무 등을 지는 효도계약은 새 법률 분쟁을 낳고 있다.
법원은 계약을 유효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부모 또는 자녀가 계약상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를 두고 사안마다 다른 판단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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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내용이 구체성 갖춰야 법원서 인정11일 세계일보가 최근 3년간 효도계약으로 법적 분쟁을 한 사건 6건을 살펴본 결과 부모가 ‘불효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경우(2건)는 모두 효도계약이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였다.
2015년 아들에게 건물 지분과 아파트 등 부동산을 증여한 모친은 아들에게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 졌다.
‘약정서’라는 이름의 효도계약에서 ‘부모를 물질적·정신적으로 안락하게 여생을 즐길 수 있게 섬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온갖 배려를 다 한다’는 조건이 문제가 됐다.
법원은 이 계약이 재산을 무상으로 이전하되 일정한 부담을 지우는 ‘부담부 증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조건이 구체적이지 않아 상대가 해야 하는 급부’(부담)로서의 요건인 적법성, 가능성, 확실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효도계약상의 ‘심부름 이행’ 의무를 지키지 않은 손자를 상대로 증여재산을 회수하려 한 할아버지가 지난해 1심에서 패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법원 “의무 이행 않으면 계약 위반”효도계약의 효력을 인정하며 상대의 의무 이행을 인정한 판결도 적지 않다.
2019년 서울의 한 건물을 아들에게 물려준 한 부모는 그 조건으로 △증여 후 3년 안에 6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부모에게 사줄 것 △아파트 구입 전까지 증여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료는 전액 모친에게 입금할 것 △부모의 병원비·생활비를 책임질 것 등을 걸었다.
아들은 부모에게 아파트를 사주지 않았고 부모가 계약 해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걸자 ‘효도계약은 강박에 의한 것’이라며 취소를 주장했다.
법원은 이들 사이 계약을 부담부 증여에 해당하고 아들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점을 인정하며 효도계약 해제와 더불어 증여받은 부동산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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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계약상 의무를 이행한 자식이 부모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2022년 B씨는 부모와 매월 생활비 150만원 지급, 부모가 10만원 이상 의료비를 지출할 경우 전액 부담할 것, 명절이나 한식 등 행사 때마다 30만원을 보조할 것을 조건으로 아파트 등을 증여받기로 하는 효도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체결 이후 약 1년 4개월간 B씨는 생활비와 명절행사비 명목으로 3000여만원을 지출했지만 약속한 부동산은 넘겨받지 못했다.
결국 B씨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B씨가 효도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고 부모가 아파트 소유권을 이전하라고 판결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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