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무기는 약간의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면, 외형이 다소 어설퍼도 적군을 속일 수 있어서 과거부터 널리 쓰였다.
하지만 전자·광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감시정찰능력이 높아지자 미끼 무기의 정교함도 한층 강해졌고, 이동과 전개가 쉽도록 재료를 경량화하는 추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하는 미끼 무기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미군 등도 관련 전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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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기업 인플라테크(Inflatech) 관계자들이 자사의 공기 팽창식 미끼 무기를 시연하고 있다. 해당 무기는 미국산 M-1 전차를 모방한 것으로서 신속한 팽창과 수축이 가능하다. AP연합뉴스 |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이후 서서히 잊혀지던 미끼 무기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웠다.
미 해군 연구소 등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쟁 전인 2017년에 제45 공병·위장연대를 창설하고 수호이 전투기와 S-300 지대공미사일 체계, T-72 전차를 모방한 미끼 무기와 위장용 군 막사 등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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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인들이 T-72 전차를 모사한 공기 팽창식 미끼 무기를 만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적외선 탐지기를 기만하고자 열을 방출하는 능력도 갖췄다.
유사시 공기를 빠르게 주입하면 미끼 무기를 곧바로 완성할 수 있다.
45연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우크라이나군 드론을 기만하는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도중 러시아는 특정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쉽게 알아챌 수준의 공기팽창식 미끼 전차를 며칠 동안 배치했다.
이후 우크라이나군 몰래 미끼를 진짜 전차로 바꾼 뒤, 방심하고 있던 우크라이나군을 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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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 장갑차가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미국이 제공한 하이마스(HIMARS·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나 에이태킴스(ATACMS) 전술미사일 등의 공격으로부터 후방 지휘소를 지키기 위해 가짜 지휘소를 만들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유도했다.
드론 공격에서도 미끼 무기가 쓰인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샤헤드 자폭드론을 대량으로 우크라이나에 발사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탄두 대신 걸레나 스티로폼 등이 들어있었다.
우크라이나군 레이더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 방공망을 소모시키고 타격 성공률을 높이려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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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기업 인플라테크(Inflatech) 관계자가 자사의 공기 팽창식 미끼 무기를 살피하고 있다. 해당 무기는 미국산 M240 다연장로켓을 모방한 것이다. AP연합뉴스 |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초반 러시아군이 북동부 하르키우를 공격했을 때, 도심의 상가에 있던 마네킹을 내세웠다.
조잡한 수준이었지만 러시아 포병을 유인하는 성과가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전선 전역에서 M-777 곡사포, 하이마스, D-20·30 곡사포, M-1 전차 등을 모방한 미끼 무기를 사용했다.
러시아의 감시정찰 기술에 맞춰 실제 무기의 발열 수준까지 모방하는 미끼 무기를 만들었다.
재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플라스틱과 폐목재, 스티로폼, 금속 등이다.
서방측이 지원한 것들도 적지 않다.
특히 풍선과 유사한 방식인 공기 팽창식 미끼 무기는 서방에서 큰 주목을 받는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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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기업 인플라테크(Inflatech)가 만든 미국산 M-1 전차를 모방한 공기 팽창식 미끼 무기. 로이터 |
적의 열화상 카메라를 교란하고 실제 무기와 같은 레이더 신호를 생성한다.
2~4명이 10분 이내에 팽창·수축·포장이 가능하며, 전체 무게는 펌프와 예비부품을 포함해 100㎏ 미만에 불과할 정도로 가볍다.
수송기를 이용한 대량·신속 운송이 가능하다.
인플라테크는 BMP-2·3 보병전투차와 T-72, T-80, T-90 전차 등 러시아산 무기는 물론 M-1, 첼린저 2, 레오파르트2A4 전차와 F-16 전투기, UH-60 헬기도 만든다.
한국산 K-9 자주포도 모방한다.
훈련 목적으로 제작되는 공기 팽창식 미끼 무기 가격은 최대 10만 달러지만, 미끼 무기가 유도하는 미사일은 최소 수십만 달러에서 최대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가성비가 매우 우수한 셈이다.
인플라테크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매출이 30% 이상 증가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중국 등에서도 공기 팽창식 미끼 무기를 생산·홍보하는 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선 러시아산 S-300 지대공미사일이나 자주포 등을 모사한 공기 팽창식 가짜 무기를 판매한다는 게시물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군도 최근 인플라테크의 제품과 유사한 공기 팽창식 미끼 무기로 적군 포병의 공격을 유도하는 훈련을 실시했으며, 유럽에서도 미끼 무기 도입을 추진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어서 관련 수요는 지속될 전망이다.
미끼 무기의 기술적 발전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기와 드론에 탑재되는 탐지장비 기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드론은 기동성도 더욱 우수해지고 있다.
항공기와 드론의 감시망을 속이려면, 미끼 무기도 다중 스펙트럼 카메라를 속일 정도로 정교해져야 한다.
또한 드론의 이동 속도에 맞출 수 있도록 경량화·기동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0여년 전부터 쓰여, 전쟁 큰 역할
미끼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사진 기록으로 남은 것은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군과 북군은 멀리서 망원경으로 전선을 살피는 장군이나 정찰병을 기만하고자 굵은 통나무를 대포처럼 세워 놓고 실제로 쏘는 시늉을 냈다.
이때 사용된 미끼 무기를 퀘이커 포(Quaker gun)라고 불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이 처음으로 전차를 실전투입하자 독일에선 나무로 만든 가짜 전차가 등장했다.
조잡한 수준이었지만 전차가 보병들에게 주는 위압감을 재현하려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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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가짜 전차를 들어올려 옮기고 있다. 게티이미지 |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테헤란에서 옛소련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과 전쟁을 논의하면서 “전시에는 진실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항상 거짓의 경호원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웠던 영국군은 트럭으로 가짜 전차를 만들고, 전차를 가짜 트럭으로 바꿔서 독일군을 속였다.
이는 엘 알라메인 전투의 승리로 이어졌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영국군은 대규모 기만 작전을 벌였다.
금속 프레임에 고무와 캔버스 천을 두른 전차 수백대가 생산되어 실제 군대가 집결하는 것처럼 넓은 곳에 배치됐다.
캔버스 천과 나무로 만든 대형 상륙정 250개도 설치됐다.
바람이 불면 넘어지는 등 지상에서 보면 누구나 가짜라는 것을 알아챌 정도로 조잡했지만, 수천m 상공을 비행하는 독일군 정찰기를 속이는데는 충분했다.
그 결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된 직후에도 독일군 15만명은 칼레에서 연합군 공격을 대비하는데 묶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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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당시 이오지마에서 한 미군이 일본군이 제작한 가짜 전차를 살피고 있다. 미 해군 연구소 캡처 |
태평양 전선에선 일본군이 정교하게 만든 모형 전투기와 전차로 미군의 정찰능력에 혼선을 줬다.
1991년 걸프전에서도 미끼 무기는 악명을 떨쳤다.
압도적인 전력 차에 직면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은 가짜 전차, 레이더, 격납고 등을 만들어 다국적군을 유인했다.
가짜 전차 엔진부에 난로를 설치해서 미군 화상 정보분석 담당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세르비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습에 맞서 가짜 미그-29 전투기 등을 제작, 군대의 전력을 상당 부분 보존했다.
가짜 미그-29는 레이돔을 철판으로 만들어 나토군이 쉽게 탐지하도록 유인했고, 엔진 배기구에는 등유를 넣어서 태울 수 있는 기능까지 설치했다.
나토군은 세르비아 공군을 무력화했다고 믿었지만, 전쟁이 끝난 직후 상당수의 전투기들이 세르비아 영공에 나타났다.
이슬람국가(IS)도 나무를 이용한 미끼 무기를 제작했으며, 현재에도 곳곳에서 미끼 무기가 쓰이고 있다.
항공 정찰능력이 훨씬 정교해지고 분석가들이 인공지능(AI) 등을 이용햐 가짜를 더 잘 식별할 수 있게 됐지만,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적군을 기만해 전술·전략적 우위를 차지하는 미끼 무기의 가치는 여전히 크다.
따라서 첨단 기술 전쟁 시대에서도 미끼 무기는 더욱 널리 쓰일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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