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봉 주교는 지난 7일 갑자기 뇌경색을 일으켜 안동병원에서 긴급 시술을 받고 이후 의식을 회복해 10일 마지막 고해성사를 한 뒤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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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북 안동시 목성동주교좌성당에서 엄수된 두봉 레나도 주교 장례미사가 끝난 뒤 두봉 주교가 성당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는 “때때로 많은 선교사가 종교적 세력 확장에만 급급하다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두봉 주교는 그렇지 않았다”며 “믿는 사람에게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느님 나라와 복음을 있는 그대로, 진리와 가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하셨다”고 덧붙였다.
장례미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염수정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등 한국천주교 주요 인사와 가톨릭 농민회 관계자 및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들과 함께 안동 대원사 주지 도륜스님과 이 지역 유림 등 다른 종교인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교황도 애도 메시지를 보냈다.
주한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두봉 주교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셨으며 주교님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 그리고 안동교구 전체에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를 전하신다”고 말했다.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의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두봉 주교는 1950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한 뒤 1953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12월 한국으로 파송됐다.
천주교 대전교구 대흥동성당 보좌신부, 대전교구청 상서국장,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을 거쳐 1969년 초대 안동교구장으로 임명되고 주교품을 받았다.
안동교구장 시절 가난한 사람과 농민을 위한 사목 활동에 힘을 썼다.
특히 천주교 신자이며 농민회 영양군 청기 분회장이던 오원춘 씨가 ‘영양군이 감자 경작을 권장했지만, 종자가 불량해 싹이 나지 않는다’며 항의했다가 납치되자 두봉 주교는 사제들과 박정희 정권에 맞섰다.
이 사건으로 추방 위기로 내몰리기도 했지만, 약자를 옹호한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평소 ‘한국인이 안동교구장을 맡아야 한다’는 소신을 지녔던 두봉 주교는 정년을 14년이나 남긴 1990년 12월 안동교구장에서 물러났다.
근래에는 경북 의성의 한 공소(公所)에서 생활하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미사를 주례하거나 멀리서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해주기도 했다.
그는 1982년 프랑스 나폴레옹 훈장을 받았고 2012년에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는 만해대상 실천부문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한양대 백남기념사업회가 주는 백남상(인권·봉사 부문)과 법무부가 주관하는 올해의 이민자상(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특별 국적도 취득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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