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14일(현지시간) 미국과의 첫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를 비롯한 산업재 전반에 상호간 '무관세'를 적용하는 '제로-포-제로(zero-for-zero)' 협정을 또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정면 돌파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EU 역시 미국이 요구하는 식품·디지털 규제 등에 '레드라인(협상 한계선)'을 명확히 그어두고 있어 양국이 합의에 이르기까지 난관이 예상됐다.
올로프 길 EU 대변인은 15일 관세 협상 관련 후속 브리핑에서 "자동차를 포함한 산업재에 대해 상호 간 관세를 전면 철폐하자는 '제로-포-제로' 협정을 다시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의 과잉 생산 문제, 반도체 및 제약 분야 공급망 회복력 확보 문제도 논의 범주에 포함됐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집행위원은 전날 미국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관세 협상을 했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미국 카운터파트와 수 시간에 걸쳐 회의를 했다.
이후 미 재무부와 고위급 회의도 별도로 진행했다.

EU는 일찍이 미국이 무역전쟁을 개시하기 수주 전부터 미국에 자동차 및 의류 등 산업재 전반에 대해 적용 가능한 무관세 협정을 제안해 왔다.
지난 2월19일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이 러트닉 장관과의 첫 회동에서 이를 전달했다.
이후에도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 제안을 미국에 전달했고, 그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와 관련해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제로 포 제로 관세 협정은 없을 것"이라며 "EU는 우리에게 매우 나쁘게 행동해 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우리로부터 사야 한다"며 "그러면 우리는 일주일만에 3500억달러(500조원)를 벌 수 있다"고 짚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를 두고 EU의 에너지 의존을 미국의 경제적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짚었다.
이 같은 미국과 EU의 극명한 시각 차는 이번 협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90일간 10%로 일시 인하된 '20% 상호 관세'와 함께 자동차·금속 등 특정 산업을 겨냥한 기타 관세들 역시 전면 철회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미국 측이 내비쳤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들은 또 "미국 측은 산업별 조치들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일부 자동차 관세는 미국 내 투자, 생산, 수출이 증가할 경우 상쇄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했다"고 블룸버그에 전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수출이 늘지 않을 경우 관세가 향후 다시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유럽이 미국에 양보할 수 없는 영역도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의 무역 조건이 불공정하다며 강하게 비난해 왔다.
미국 정부는 EU가 복잡한 규제 체계를 통해 자국 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위생(SPS)·검역·디지털 분야에 대한 불만이 집중돼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식품, 보건, 안전과 관련된 EU의 기준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며, 기술 및 디지털 시장 관련 규제 역시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전략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EU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관측된다.
길 대변인은 "EU는 할 만큼 했다"며 "이제는 미국이 입장을 정리해야 할 때"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추가적인 관여 수준이 필요하다.
이제 정말 공은 미국에 넘어갔다"고도 강조했다.

다만 유일하게 '철강·알루미늄 글로벌 공급 과잉' 건은 미국과 EU 모두 공통적으로 우려를 제기하는 부분인 만큼 합의 도출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는 중국의 과잉 생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세계 1위 철강 생산국인 중국은 약 10억510만t을 생산해 전 세계 공급량의 53.4%를 차지했다.
알루미늄은 약 4100만t으로 59%에 이른다.
한편 EU는 자국이 준비 중인 보복 조치가 약 210억유로(33조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을 겨냥하고 있다며 선전포고를 한 바 있다.
협상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없을 경우 90일 이후 즉각 발효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와 별도로 구글, 메타 등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를 겨냥해 추가 보복조치 준비에 착수했으며, 전 세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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