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엔비디아가 최대 협상 카드가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진단했다.
양국 간 인공지능(AI) 패권 대결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수출 규제 강화로 엔비디아는 5000억달러(약 709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됐다.
전날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엔비디아의 H20 칩을 중국으로 수출할 때 새로운 수출 허가 요건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도 미 정부로부터 H20 칩 중국 수출 시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이 규제가 무기한 적용될 것이란 통지를 받았다고 했다.

이같은 소식에 이날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6.87% 하락 마감했다.
H20 칩은 미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엔비디아가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최고사양 AI 칩이다.
2022년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때 안보 우려로 최첨단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막자 엔비디아는 수출 규제를 피해 기존 H100 칩에서 성능을 하향한 H20 칩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출길이 막힌 것이다.
조 무어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H20 칩의 성능은 2년 전까지 엔비디아의 최고급 칩이었던 H100 시리즈와 비교해 약 75% 낮다.
이 같은 규제 조치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145%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125% 보복 관세로 받아쳤다.
WSJ는 "엔비디아는 AI 컴퓨팅 분야에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어 하위 사양 칩도 수요가 넘친다.
그러나 무역 전쟁 속에서는 이는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지 않는다"며 "엔비디아는 이제 AI 개발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중국 시장에서 저성능 칩까지 판매하지 못하게 된 것은 무역 전쟁이 엔비디아의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보여준다"고 했다.
엔비디아는 H20 칩의 중국 수출이 막히며 이번 분기 55억달러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지난 회계연도에 H20 칩을 포함하는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1152억달러 매출을 올렸다.
팩트셋 추산에 따르면 올해 해당 부분에서 약 1820억달러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WSJ는 H20 칩이 엔비디아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수출 규제로 인해 엔비디아가 월가의 기대치를 넘고 실적 전망을 상향하는 데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체는 "특히 주목할 점은 규제 강화 조치가 나오기 하루 전에 엔비디아가 미국 내 AI 슈퍼컴퓨터를 제조하기 위해 최대 5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미국 기업의 제조 공장 이전을 추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의 사저 마러라고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에 백악관이 중국 내 H20 칩 판매 금지 계획을 철회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오기도 했다.
WSJ은 "무역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은 미국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자사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라며 "요즘은 5000억달러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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