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한국에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다.
협정을 이행하려 노력하고, 약속을 지킨다.
오늘날 세상에서는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
"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주한 EU 대사가 서울 중구 주한유럽대표부에서 진행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미국이 고율의 '관세 폭탄'을 발표하며 무역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미 통상을 넘어 자칫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될 것이란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사는 "(EU는) 미국과 협상에 열린 자세다.
발표 전부터 미국과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며 "유럽의 가치와 이해관계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고, 이를 위한 대응책도 준비 중이다.
한국을 비롯한 파트너 국가와 양자 관계 강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60년 이상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EU처럼 규범 기반 국제 질서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한국과의 관계에 주목했다.
페르난데스 대사는 "비즈니스에 있어서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규범 존중은 중요하다.
유럽과 한국은 전 세계 무역 시스템을 상징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보호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이어 "EU와 한국이 FTA를 체결한 지 14년이 지났다.
이를 통해 양국은 윈윈할 수 있었다"며 "2011년 FTA 체결 당시 630억유로(약 102조원)이던 교역 규모는 2023년 1300억유로(약 210조원)로 엄청나게 뛰었다"고 덧붙였다.
페르난데스 대사에게 한국은 의미가 큰 나라다.
올해 두 번째 한국살이 마무리를 앞둔 그는 "처음 해외 근무를 시작한 나라도 한국이고, 마지막 해외 근무 국가도 한국"이라며 "경력에 있어서 원을 그리며 잘 마무리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총 9년을 한국에 머무른 만큼 한국 문화에도 애정이 깊다.
페르난데스 대사는 이천에 가서 도자기 체험을 해보기도 하고, "한국에 있으면 한국인들이 하는 것을 해봐야 한다"며 한국 친구들과 찜질방과 목욕탕에 가서 때도 밀어봤다.
특히 한국 사찰에 관심이 많다.
다른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사찰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진관사, 통도사, 백양사 등 웬만한 한국인들보다 많은 사찰을 가봤다.
주위에 템플스테이를 추천하기도 한다.
그는 "사찰에서 지내면 한국과 한국인, 한국 문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과 EU가 협력이 잘되고 있는 분야는 무엇이고, 앞으로 중점을 두면 좋은 분야는 무엇인가.
▲한국은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EU와 경제, 정치, 위기관리 등 굵직한 세 가지 주요 협정을 체결한 국가다.
이에 더해 2023년에 외교 관계 체결 60주년, 즉 환갑을 맞아 세 가지 파트너십을 추가했다.
디지털, 녹색, 보건 분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지난해엔 안보, 국방 분야 협정을 체결해 양자 협력이 더욱 확장됐다.
이 같은 파트너십을 통해 다양한 채널이 새롭게 열렸다.
또 중요한 것이 과학 혁신이다.
유럽의 대규모 연구 혁신 프로젝트인 호라이즌 유럽에 한국이 준회원국이 된다.
한국과 유럽 간 과학 혁신이 더욱 촉진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해양 안보, 사이버 위협, 하이브리드 위협 대응, 대테러, 해외 정보 간섭·조작 등이 한국과 유럽에 큰 위협이 되는 만큼 안보·국방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에서도 상호 협력이 증대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인적 교류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주한 EU 대사로서) 한국과 EU가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갖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유럽이 새로운 도전 과제에서도 더욱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EU는 지리적으론 멀지만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온 만큼 닮은 점도 많을 것 같다.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EU와 한국은 민주주의, 인권, 규범 기반 국제질서, 다자주의를 중시한다.
유엔(UN) 프레임워크에서 주창하는 원칙을 같이 수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해서 국제적으로 이러한 가치를 수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EU와 긴밀한 협력 관계다.
한국이 많은 목소리를 내고 EU의 편에서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길 바란다.
-한반도 관련 분야에서 오래 근무하셨다.
EU에서는 한반도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 안보와 아시아 안보는 별개 문제가 아니다.
알고 있겠지만, 북한 군인과 북한제 탄약, 미사일 등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발견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를 상당 부분 지원하기 때문에 전장에서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 상호 연관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최근 유럽 재무장 기조 속에서 한국 방산 기업과 EU 간 협력이 확대될 수 있을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중요한 부분은 EU가 평화 프로젝트로 출발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EU는 유럽 대륙의 평화와 번영이 유지되도록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왔다.
평화와 안보는 같이 간다.
안보가 보장돼야 평화가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전쟁 때문에 유럽도 위험에 놓여있다.
EU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EU는 국방 분야 강화를 위한 백서를 발표했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각 회원국 예산에서 돈을 차출하고, EU도 예산을 별도 책정했다.
약 1500억유로(약 244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 기금은 유럽 방위산업 기반 강화를 위한 공동조달 지원 규정(SAFE)을 통해 운영될 예정이다.
EU와 국방 안보 파트너십 체결 국가들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아시아에선 한국, 일본 등이 가능성이 있다.
-한국 부임 5년 차를 맞은 소회와 20년 전 첫 한국 부임 때와 달라진 점을 느끼는 게 있을지 궁금하다.
▲(한국어로) 바빠요. 빨리빨리. 이번 두 번째 부임한 5년을 굉장히 바쁘게 보냈고 시간이 빨리 흘렀다.
처음 부임했을 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나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위기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계엄이 선포됐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EU 양자 관계에 있어서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었던 5년이기도 해서 기쁘다.
이 기간 4개 파트너십을 새로 체결했고, 호라이즌 유럽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런 패키지를 후임 대사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놨다.
오늘날 한국은 예전보다 더 세상에 문을 열고 나갈 준비가 돼 있다.
국제 가치와 규범, 질서를 수호할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한 것 같다.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더 창의성을 존중하는 나라로 바뀌어서 젊은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준다.
달라진 환경이 한국 문화 발전으로 이어진 것 같다.
한국은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예전에는 북촌 한옥 다수가 망가져 있어서 관광이 어려웠는데 복원 작업을 거쳐 이제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녹지공간도 늘었다.
2008년 한국을 떠났는데, 청계천 개방을 앞두고 준비 작업을 오래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남산 산책로도 예전엔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아름답게 잘 조성됐다.
또 두드러진 변화는 예전보다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정착됐다는 점이다.
많은 부모가 가족과 즐겁게 주말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하는 여성의 비중도 천천히 증가했다.
과학, 언론, 기업 등 여성들과 네트워킹을 많이 하려 노력한다.
여성의 사회, 경제적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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