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라이벌이자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 왔던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며 창끝을 턱 밑에 들이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사실상 무역 금수 조치 속에 경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3%를 차지하는 양국의 경제 탈동조화(디커플링)는 이미 진행 중이다.
더 나아가 양국 갈등은 공급망과 플랫폼·기술·외교 등을 포함한 전방위적 전면전으로 확전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관계 파탄으로 새로운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며 "경제적 관계가 틀어지면서 향후 수년간의 전반적인 세계 안보와 경제적 안정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본지는 군사, 기술, 경제 부문에서 펼쳐지고 있는 두 강대국의 패권 전쟁 실태와 파장 등을 총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미국과 중국 간 군사·외교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다자 안보 협력을 통한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있고, 이에 맞서 중국은 비(非)서방 연합을 구축함과 동시에 민·군 융합 전략으로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이처럼 미·중 간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진 배경에는 양측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지정학적 패권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월21일(현지시간)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은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외교장관회의를 마친 뒤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해양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의 평화, 안정, 안보 등이 인·태 지역 사람들의 발전과 번영을 뒷받침한다는 신념을 유지하고 있다.
무력이나 강압에 의해 현상을 변경하려는 일방적인 행동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루비오 장관은 '무력이나 강압'을 행사하는 국가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중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보이는 공세적인 행동에 대한 우려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쿼드는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재난 등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7년에 미국 주도로 설립됐다.
이후 중국의 급부상과 함께 중국 견제를 암묵적 목표로 하는 안보 협의체 성격이 짙어졌다.
루비오 장관의 외교 무대 '데뷔전'이었던 이날 쿼드 회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거의 동시에 열리면서 중국 견제가 미국의 최우선 순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쿼드 외에도 미·영·호주 안보 동맹 오커스(AUKUS), 미·일·호주·필리핀 4개국의 비공식적 안보 협의체 스쿼드(SQUAD) 등 인·태 지역에서의 다자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으로부터 한반도·동중국해·남중국해를 같은 전쟁 구역으로 보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같은 전략에 미국이 긍정적으로 반응한 데에는 인·태 지역 주요국 간 방위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자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중국은 비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 및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계획 등을 통해 미국에 맞서는 글로벌 리더십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으로부터 '관세 폭탄'을 맞은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해 미국을 겨냥한 '패권주의 반대' 행보를 이어가기도 했다.

특히 군사적 측면에서 중국은 해군력 팽창을 통해 미국에 큰 위협을 주고 있다.
지난해 미 국방부가 발간한 '2024 중국 군사력 보고서'는 중국 해군이 370척이 넘는 함정과 잠수함을 보유해 세계 최대 규모이며 그 숫자가 올해 395척, 2030년 435척까지 늘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미 해군은 냉전 이후 자국 조선업체들이 함정 건조·수리 역량에서 경쟁력을 잃으며 지난해 말 기준 295척의 군함을 운용하고 있다.
군함뿐만 아니라 유사시 전략 물자 수송 능력을 좌우하는 국적 상선 보유량도 중국은 7000척 이상에 달하지만, 미국은 200척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급성장한 중국의 군사력은 중국 정부의 민·군 융합 전략이 성과를 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컨설팅 업체 스트래티직 커뮤니케이션의 제임스 데이비드 스펠먼 대표는 "중국 정부는 주권 수호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민·군 융합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민간의 혁신과 생산 능력을 군사 목적에 활용하고자 한다"며 "이는 이중용도 기술 확보는 물론, 수출에서 소비 중심으로 전환 중인 중국 경제를 되살리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민·군 융합을 통해 드론, 극초음속 미사일, 인공지능(AI) 기반 감시 기술, 위성항법 시스템인 '베이더우' 등에서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술은 남중국해에서의 해군력, 사이버 및 우주 공간에서의 전력, 핵무기 현대화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며 "중국의 군산복합체가 동맹 구조를 재편하고 무역 흐름에 영향을 주는 주요 변수가 되면서 경쟁국들이 이에 발맞춰 전략을 새롭게 조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미 국무부는 공식 홈페이지의 '대만과의 관계에 관한 팩트시트' 자료를 업데이트하면서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대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입장 차이는 강제성 없는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돼야 하며 양안 주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중국은 미국이 잘못을 시정해야 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라며 "(미국은) 미·중 관계 및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피해를 추가로 주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을 둘러싼 이 같은 미·중 간 외교 공방은 곧바로 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졌다.
이달 초 중국 인민해방군은 육·해·공군을 동원해 대만을 사방으로 둘러싼 형태의 포위 훈련을 전개했다.
특히 중국은 이날 훈련에 '해협 레이팅-2025A'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다.
지난해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건국 기념일 연설을 문제 삼아 수행한 '리젠' 훈련이 '2024A'와 '2024B'로 두 차례 시행됐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군사 훈련이 한 번에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미국은 미사일 배치로 맞섰다.
미군은 다음 달 9일까지 대만 주변 해역에서 실시하는 미·필리핀 최대 연례 합동 훈련 '발리카탄'에 대함 미사일 시스템인 '해군·해병대 원정 선박 차단 체계(NMESIS·네메시스)'를 처음으로 투입한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네메시스는 미국이 중국을 해상에서 봉쇄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무기체계다.
이를 통해 남중국해를 포함한 대만 일대에서 중국군이 도발할 경우 미사일 전력으로 중국 전력을 물리치는 작전을 수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헤그세스 장관은 "중국 공산당의 공세에 맞선 철통같은 동맹과 힘을 나타낸다"고 했고, 로미오 브라우너 필리핀군 참모총장은 "대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불가피하게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강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대만을 지속해서 위협하는 중국의 '무력 시위'가 중국공산당 체제의 정통성 문제를 반영하는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의 로리 대니얼스 이사는 "중국에게 대만 문제는 (외부 세력의 개입 없이) 중국과 대만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국내 정치 분쟁"이라며 "이 문제의 해결은 과거 중국 내전이 남긴 미완의 과제를 푸는 것임과 동시에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 핵심 요소로 여겨진다"고 했다.
이어 "중국이 군사 훈련을 반복하는 모습은 대만이 법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세계 각국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상황이 현실화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나타낸다"며 "2022년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나 친미·반중 성향인 라이칭더 총통의 독립 성향 발언, 대만을 향한 미국의 유대 강화 조치 등이 있을 때마다 중국이 대규모 군사 훈련을 전개한 것이 그 증거"라고 설명했다.
대니얼스 이사는 '양안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입장을 양보하지 않는 중국과 대만 문제가 중국의 무력으로 해결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미국이 군사적 긴장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군사 전략가들이 대만을 향한 중국의 군사훈련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이 가장 원치 않는 결과인 '미국의 군사적 대응 강화'를 불러오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양상은 대만, 중국,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잘못된 의사소통의 고리를 끊고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형 기자 trus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