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앞두고, 산중에 녹음이 짙어져 간다.
과거에는 이 무렵부터 낙엽이 지는 가을철까지 산불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수분을 머금은 잎사귀가 산불 발생 빈도를 줄이고, 확산 저지에 효과를 갖는다고 본 것이다.
현장에서는 "아카시아 꽃이 피면 산불도 주춤해진다"는 통설도 전해졌다.
녹음이 짙어진 계절이 산불 현장에 일종의 '쉼표'가 된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산불의 연중화로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현장에서는 쉼표 없이 이어지는 산불 상황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아카시아에 얽힌 통설도 '옛말'= 아카시아는 5~6월에 개화하는 나무다.
산림청 안팎에서는 그간 이 나무가 개화하는 시기를 즈음해서부터 산불 위험도가 낮아지는 것을 통설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통설도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됐다.
산림청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는 총 279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를 계절별로 구분했을 때는 봄철(3~5월) 158건, 여름철(6~8월) 35건, 가을철(9~11월) 26건, 겨울철(12월~이듬해 2월) 60건이 각각 발생한 것으로 집계된다.
전체 산불 현황을 놓고 볼 때 산불은 여전히 봄철과 겨울철에 주로 집중되는 양상이다.
반대로 여름철과 가을철 산불 발생 건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다만 산불의 연중화로 여름~가을철 산불 발생 빈도가 점차 늘고 있는 것은 수치상으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계절별 산불 발생의 10년 평균 현황을 살펴봤을 때 여름철 산불은 2006년 기준 14.0건에서 2024년 기준 50.3건으로 3.6배, 가을철 산불은 2006년 38.0건에서 2024년 46.6건으로 1.2배 각각 늘었다.
여름철 산불 현황을 따로 떼어놓고 볼 때의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2006~2014년 여름철 산불은 총 145건(연평균 16.1건) 발생했지만, 2015~2024년 여름철에는 총 503건(연평균 50.3건)으로 산불빈도가 확연하게 늘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산불 현장에서는 예전과 달리 여름~가을철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은 "산림청 안팎에서는 과거부터 '아카시아 꽃이 피면 산불도 주춤해진다'는 말이 통설처럼 전해졌다"면서도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통설도 현장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2022년 밀양에서 발생한 산불만도 5월 말 발생해 6월 초까지 이어졌다"며 "이제는 사시사철 산불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부연했다.

◆지쳐가는 산불 현장 그리고 '사람'= 쉼표 없는 산불 상황에 사람이 지쳐간다.
진화 현장을 종횡무진 발로 뛰어야 하는 인력이 겪는 고충도 크지만, 후방에서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지휘하는 인력의 피로감도 역력하다.
지난달 의성산불 당시 함양산림항공관리소 소속 공중진화대 대원 A씨는 일시적 협심증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산불 진화 현장을 누비는 사이 누적된 피로감(과로)이 원인이었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8일까지 A씨처럼 의성산불 현장에 투입된 공중진화대는 916명,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1789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공중진화대와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화마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사투를 벌인다.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기 쉽고, 피로감도 배로 쌓인다.
대형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이들의 활약과 고충이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이유다.
산불 현장을 직접 누비지 않더라도, 후방에서 지원하는 인력의 피로감도 상당하다.
의성산불 당시 현장 지휘본부에서 활동한 산림청 관계자는 "(의성산불 당시) 진화 현장에 투입된 인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휘본부 내에서도 산불 상황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직원이 적지 않았다"며 "연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에 수일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건강상 이상 신호를 느낀 직원이 많았다는 얘기"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쉼표 없는 산불 상황이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산불 현장의 피로도는 앞으로도 계속 쌓여가기 쉬울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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