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자기결정권이 미성숙한 아동·청소년을 성적 동의, 계약의 주체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메신저, 익명 기반 플랫폼 등을 통해 온라인에서 친밀감을 빠르게 형성하는 아동·청소년은 예전보다 더 쉽게 성착취 범죄에 휘말린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로 지원받은 4명 중 1명은 10대(27.8%)였다.
2023년도 대비 센터의 지원을 받은 10대 피해자는 600명 이상(3.3%포인트) 늘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는 명백한 성학대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없는지 실제 피해 사례를 토대로 어떤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사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과 이윤이 더 앞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청소년의 성공, 성취, 부모들의 희생 이런 것으로 가리고 있는 겁니다.
넓은 범주로 보면 아동학대에요."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피프틴' 편성 취소를 주장해 온 이선희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아동·청소년 성상품화, 성착취 논란에 휩싸인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언더피프틴은 만 15세 이하 아동과 청소년만 참가하도록 만들어진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걸그룹을 뽑기 때문에 성별은 여성으로 한정했다.
만 8세밖에 되지 않은 아동까지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동·청소년 성상품화, 성착취 논란에 휩싸였다.

티저 영상이 공개되자 부정적 반응은 더욱 극대화됐다.
영상에는 미성년자인 출연자들이 크롭탑 등 노출 차림으로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출연자들 소개 사진 밑에 바코드를 삽입해 아동·청소년 출연자들을 상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결국 논란이 커지면서 지난달 31일 예정됐던 첫 방송은 취소됐고, 영상은 비공개 처리됐다.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의 성적 대상화가 미디어를 통해 무방비적으로 노출되면 또래 집단인 아동·청소년은 물론 성인들도 이를 비판 없이 수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청소년은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인정 욕구가 있다"면서 "프로그램은 청소년을 칭찬하는 방식으로 섹슈얼리티를 하나의 재능, 능력으로 여기게끔 한다"고 했다.
이어 "아동·청소년의 섹슈얼리티가 성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문화적 시그널이 허용되면, 청소년 사이에서도 벌어지는 딥페이크 같은 성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비판했다.
또 "아동·청소년은 희망, 성공에 대한 가치와 방향을 정할 때 혼자 결정하지 못한다"며 "아동·청소년이 프로그램 출연을 수용했다는 것 만으로 아동의 권리가 지켜졌다고 보는 것은 왜곡"이라고 꼬집었다.
양이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그동안 대중문화 산업에서 여성 아동·청소년 외모와 신체를 강조하는 방식이 성적 대상화로 이어지는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돼 왔음에도 언더피프틴이 이를 되풀이했다고 강조했다.
양이 공동대표는 "아동과 청소년이 미디어에서 어떻게 보이는 가에 대한 기준이나 방식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아동·청소년이 자신의 주체성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교육도 거의 없기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유튜브 인플루언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노출된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기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출연 예정인 아동·청소년들의 사진과 함께 바코드를 넣은 것은 정말 과도했던 부분으로 본다"면서 "제작사 입장에서는 학생증을 인용한 것이라면서 해명했지만, 바코드는 전형적인 상품의 표기 방식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과거보다는 사회적으로 성적 감수성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편차는 존재한다"면서 "아동·청소년을 성적 대상화 하는 것에 관대한 면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언더피프틴 제작사 측은 "어린 친구들을 성 상품화했거나, 이들을 이용해서 성 착취 제작물을 만들지 않았다"며 "이러한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오해"라는 입장이다.
아동·청소년 성 상품화 이슈가 사회적으로 지속적인 논란이 되자 국회는 법안 개정에 나섰다.
올해 1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에 따르면 대중문화예술사업자는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과 계약할 때 예술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학습권, 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등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계약에 포함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보호책임자를 지정해야 하며 관련 자료 제출도 해야 한다.
오는 8월부터 시행된다.
다만, 이를 어겨도 제재할 방법은 없다.
과태료 등 법적 조치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청소년 보호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8월 첫 시행 후 곧바로 과태료 등 부과는 과도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유관 단체 등과 의사소통하는 단계이고,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있어 (과태료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디지털 성범죄,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성착취, 교제폭력, 스토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여성긴급전화 1366(☎1366)에서 365일 24시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 관련 상담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청소년상담채널 디포유스(@d4youth)를 통해서도 1:1 익명 상담이 가능합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