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남긴 희곡 ‘헨리 4세’에서 전한 메시지다. 왕의 자리에 오른 이는 명예와 권력을 쥔 만큼 그에 준하는 책임감이 함께한다. 저명한 심리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브레네 브라운은 ‘갑옷으로 무장한 리더십’이라는 개념을 꺼냈다. 자기 자신의 취약함을 숨기려고만 하는 리더의 방어적인 태도를 꼬집었다. 또한 오만과 독단이 구성원의 신뢰를 잃게 만든다는 대목이 핵심이다. 작금의 한국 체육계를 둘러싼 우려와 일맥상통한다. 한국 체육의 리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또 온갖 잡음으로 가득 차 있다. 체육회 비위 여부 점검을 실시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이 회장 등 8명을 부정 채용, 금품 수수 등 각종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수사를 의뢰했다. 내사도 시작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통보를 내렸다. 이 회장의 혐의로 대한체육회는 비리 조직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놓였다. 특히 이번 수사 대상에서 임원부터 말단 직원까지 포함됐다는 소식에 모두가 놀랐다는 후문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부정 행위를 저질렀는지 내부적으로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한 관계자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누가 이런 곳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분위기를 수습하고, 직원의 고충을 함께 나눠야 할 이 회장은 뒤로 숨었다. 지방 및 해외출장을 오가면서 의혹을 풀어야 할 자리를 피했다. “나와 관계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문체부의 처분에 소송으로 대응하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회장을 추종하는 대한체육회 내 세력들은 3선의 길까지 터줬다. |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체육회 직원들은 더는 참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규탄 집회를 열었다. 당시 노조는 “후안무치 내로남불”을 슬로건으로 외쳤다. 계속된 정부 조사로 직원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이 회장의 발언을 반박하며 그들은 “정부의 조사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이 회장의 독선적인 운영 때문이다. 누적된 피로감이 어마어마하다. 더는 묵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체육 대통령’이라고 일컫는 대한체육회장은 해마다 정부로부터 4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잘 활용해 한국 체육을 이끌어가야 할 중요한 자리다. 왕관은 막강한 권력, 권한을 동반한다. 그만큼 책임감도 커야 한다. 부정채용, 금품수수의 경우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 같은 논란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팎의 신뢰를 저버린 순간 그 힘을 지킬 원동력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책임감 없는 리더를 믿고 따를 직원은 아무도 없다. 이를 지지해 줄 국민도 없다. 체육회 현 체제는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 바탕에 짙게 깔린 이 회장의 그림자는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리더의 ‘퇴장’ 여부를 두고 많은 이목이 쏠린다.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마주한 한국 체육 쇄신의 기회, 적어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필요하다. 헨리 4세는 사촌동생 리처드 2세를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다. 하지만 평생 왕위찬탈자라는 오명 속에 살아야 했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아들까지 의심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 살아간 헨리 4세는 결국 말년에 수차례 발작 증세를 보이는 등 병으로 사망한다. 왕관의 무게를 받아들이지 못한 리더의 말로를 기억해야 한다. 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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