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마지막 시즌 앞두고 독한 면모
‘당근보다 채찍’ 언급하며 성장 강조
최근 이적·은퇴로 전력 유출도 많아
2루수·유격수 주전 무주공산 상황
특유 리더십 팀 변화 이끌지 주목
“어린 선수들의 성장이 팀의 발전”
프로야구 스프링캠프가 막바지에 다다르면 각 구단에서 희망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영입생과 유망주들이 기대 이상의 컨디션과 기량을 보여준다면서 올해는 일을 낼 것이란 소식이 봇물 터지듯 전해진다.
캠프가 끝날 때면 우승후보가 아닌 구단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저희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붕 뜬 기분보다는 차분하게 정규시즌을 준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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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두산 감독이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
조금 과장을 보태서라도 ‘선수들의 컨디션이 너무 좋아 자신감이 넘친다’거나 ‘올해는 정말 일을 낼 것 같다’는 분위기를 전혀 풍기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 지켜보니 이 감독이 진중한 이유가 충분히 짐작됐다.
먼저 두산의 전력이 객관적 지표상 약화됐다.
지난 스토브리그에 전력보강보다는 유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전 3루수였던 허경민이 KT로 이적했고 베테랑 유격수 김재호는 은퇴했다.
주전 2루수였던 강승호가 3루수로 이동하면서 내야의 센터라인인 2루수와 유격수 주전이 무주공산이 된 상황이다.
여기에 외야 한 자리와 5선발도 아직 확정되지 못한 상태다.
박준영, 박계범, 이유찬, 박지훈, 오명진, 여동건, 박준순이 내야 자리에 도전하고 있다.
외야 한 자리는 김민석, 추재현, 강현구, 조수행, 전다민이 경쟁한다.
5선발 자리에는 최원준, 김유성, 최준호, 김민규 등이 오디션을 보고 있다.
일단 이 감독은 “선택할 시점이 오면 머리가 아플 거 같다”고 하지만 ‘행복한 고민’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그저 “후보감 선수가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건 팀에 긍정적인 요소”라고 했다.
이런 면이 어쩌면 이 감독이 전과 달라진 모습으로 읽힌다.
사령탑에 오르고 지난 두 시즌 동안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 하기를 꺼렸지만 3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인 올해는 독한 모습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감독의 지난 2년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만족스럽지도 못했다.
전년도 9위였던 팀을 부임 첫해인 2023년 정규리그 5위로 끌어올렸고, 이듬해는 외국인 선수들의 줄부상 속에서도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가을야구에서는 모두 초반 탈락해 아쉬움을 남겼다.
팬들 눈에 차지 않는 성과였다.
더군다나 미야자키 캠프를 격려 방문한 박정원 구단주는 가벼운 덕담만 하던 예전과 달리 올해는 “4·5위 하려고 야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선수단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이 감독은 구단주의 메시지에 화답하듯 선수단에 충격요법을 썼다.
지난달 27일 일본 소프트뱅크와 경기에서 집중력을 보이지 못하며 0-9로 완패하자 선수 5명을 2군 캠프가 있는 미야코지마로 보내버렸다.
스프링캠프가 4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조치다.
자연스레 선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긴장했고, 1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선 완전히 달라졌다.
두산이 10-4로 승리했다.
이 감독은 “주전 라인업이 확실한 선수들을 빼면 나머지 선수들은 이미 시즌이 개막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생존하지 않으면 2군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본인들이 어떤 플레이를 해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고민해야지 3월22일 개막전에 맞춘다는 거는 아주 큰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베테랑 선수들과 같이 움직인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어린 선수들에게는 당근보다 채찍을 좀 들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올 한 해는 어린 선수들이 좀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 선수들의 기량과 두산 베어스라는 팀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
아직 이르긴 하지만 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는 2025시즌 5강 예상 팀에서 두산의 이름을 찾기가 어렵다.
아직도 라인업에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는 여전하지만 독하게 변모한 이 감독의 지도력이 두산을 다시 강팀으로 탈바꿈시킬지 주목된다.
미야자키=송용준 선임기자 eidy01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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