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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의 김호철 감독이 지난달 28일 화성 페퍼저축은행전에서 세트 스코어 3-0 완승을 거둔 뒤 세터 김하경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남긴 첫 마디다.
페퍼저축은행전 이전까지 후반기 1승12패라는 극악의 부진을 거듭하던 IBK기업은행은 이날 승리를 통해 ‘후반기 2승’째를 신고하는 데 성공했다.
1승이 이렇게나 어려웠던가를 새삼 체감하고 있는 IBK기업은행 선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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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데, 하루 아침에 주전 세터가 자리를 비우면서 팀 공격 전체가 흔들렸다.
천신통의 자리를 대신한 이는 프로 11년차의 김하경(V리그 소화 9시즌, 2017~2019 대구시청). 백업 역할로 시작했으나 갑작스레 주어진 주전 자리는 김하경에겐 버거웠다.
국내 선수들과는 그래도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이었지만, 주포인 빅토리아 댄착(우크라이나)에게 보내는 토스가 길거나 짧거나 네트에 지나치게 떨어지는 등 흔들리면서 IBK기업은행의 경기력은 오락가락했다.
김하경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서 3년차 김윤우, 신인 최연진까지 코트 위에 서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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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트에 잠시 흔들려 웜업존을 다녀왔을 뿐,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김하경이 코트를 지켰다.
빅토리아에게 향하는 토스도 이전 경기들에 비해 안정됐고, 반격 상황이나 리시브가 잘 올라온 상황에서 이주아의 이동공격, 최정민의 속공 등 미들 블로커 활용도 돋보였다.
박사랑, 이원정을 번갈아 기용하며 흔들렸던 페퍼저축은행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경기 뒤 김 감독은 김하경 얘기가 나오자 “짜식...”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은 뒤 “잘 하다가도 한 번씩 하지말라는 엉뚱한 짓을 한다.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굴곡없는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충분히 세터로서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며 제자를 향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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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 감독은 “경기장에서 화를 내면 안되는데, 하경이니까 화를 낸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알아듣는 선수니까. 연습 때 상황상황마다 이렇게 하자고 맞춰놓고, 중요한 상황엔 누구한테 공을 올려야 하는지, 개인 미팅까지 하면서까지 맞췄는데도 중요한 순간에 엉뚱한 곳으로 공을 올리니 화를 낸 것이었다.
이 부분은 본인이 깨우쳐야 한다.
그래도 오늘은 마지막 순간에 토스를 너무 잘했다”라고 말했다.
승장 인터뷰 후 김하경이 이소영과 함께 수훈선수 인터뷰에 들어섰다.
후반기 2승째를 거둔 김하경은 “연패를 끊어서 너무 좋다.
하고자 했던 게 다른 경기보다는 나온 거 같아서 좋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주전이 아닌 백업으로 시즌을 준비했기에 김하경으로선 충분히 혼돈이 올 수 있는 상황이다.
김하경도 “교체 선수로 준비할 때와 주전으로 하는 역할은 아예 다르니까...시즌 준비를 다르게 했던 게 맞다.
그래도 지금은 어떻게든 잘 해야 하는 게 내 역할이다.
내가 뭘 잘하겠다라는 마음보다는 선수들과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보여준 적극적인 미들 블로커 활용은 경기 전 이주아, 최정민과 미리 얘기된 부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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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남자 프로배구 시절보다는 덜해졌지만, 조금만 흔들리거나 엉뚱한 플레이가 나오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특히 현역 시절 한국 세터 계보를 잇는 ‘명세터‘ 출신이다 보니 세터들에 대한 질책은 더욱 강하다.
김하경도 김 감독이 신경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경기 중 범실성 플레이가 나오면 김 감독을 쳐다보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이에 대해 묻자 “감독님 의식이 될 때도 있지만, 먼저 매맞는 느낌으로 미스를 인정하는 것이다”라면서 “나도 내가 잘못한 걸 알고 있고 인정하겠으니 조금만 소리 지르지 말아 달라는 뜻으로 쳐다보는 것”이라면서 웃었다.
이어 “큰 소리를 들어도 멘탈 흔들리지 않고 다시금 잘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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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경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IBK기업은행의 차기 시즌 구상이 달라질 수 있다.
두 시즌 연속 아시아쿼터 슬롯에 세터를 데려왔다가 두 번 모두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외국인 세터들이 팀을 떠나면서 고생한 IBK기업은행이다.
김하경이 남은 4경기에서 확신을 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IBK기업은행이 내년 시즌엔 아시아쿼터 슬롯에 세터가 아닌 공격수를 보강할 수 도 있다.
김하경은 “시즌 막바지에 이미 순위가 이렇게 정해진 상황인 만큼 우선적인 목표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라면서 “조금 더 웃으면서 배구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라고 각오를 전했다.
화성=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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