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커벤트리-사마란치 3강
한국 스포츠외교, 사실상 공백 상태
개인자격 IOC위원 배출이 시급한 과제
![]() |
차기 IOC위원장 후보들이 토마스 바흐 현 위원장(가운데)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라파르티앙, 커벤트리, 사마란치 주니어, 쿠베르탱 동상, 바흐, 엘리아쉬, 와타나베, 후세인, 코 후보. / IOC 홈페이지 |
[더팩트 | 유병철 전문기자]
# ‘3강 4약’ 혹은 ‘2강 1중 4약’. 오는 20일(현지시간) 그리스의 코스타 나바리노에서 치러지는 제10대 IOC위원장 선거의 판세를 주요 외신은 이렇게 점치고 있습니다. 새 위원장의 임기는 오는 6월 23일 시작되며, 임기는 2033년까지 8년입니다(이후 4년 연임 가능).
이 사이 4번의 동하계 올림픽이 열리고, 한국의 전라북도는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합니다. 극도로 폐쇄적인 IOC의 분위기 상 위원장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유승민 IOC선수위원(현 대한체육회장)은 2024년 여름 8년 임기가 만료됐고, NOC(국가올림픽위원회) 자격으로 IOC멤버였던 이기흥 전 대한체육회장은 3선 실패로 자격상실 전 자진사퇴했습니다.
누가 차기 '세계 스포츠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한국에 조금이나마 더 좋을까요? 현재 한국의 IOC위원은 IF(국제경기단체) 자격의 김재열 국제빙상연맹 회장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IOC위원 경력이 약 1년 반으로 아직 존재감이 약합니다.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7명의 후보 중 친한(親韓)으로 분류할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3강으로 꼽히는 세바스찬 코(68 영국) 세계육상경기연맹 회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주니어(65 스페인) IOC 부위원장, 커스티 커벤트리(42 짐바브웨) IOC 집행위원은 한국과 이렇다 할 핫라인이나 인연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마란치 주니어는 노골적인 친중 및 친러시아 인사로 요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4약으로 분류되는 다비드 라파르티앙(51 프랑스) 국제사이클연맹 회장, 요한 엘리아쉬(63 스웨덴)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 회장, 파이잘 알 후세인(61 요르단) 왕자, 와타나베 모리나리(66 일본) 국제체조연맹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 |
세바스찬 코 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 영국에서 귀족 작위를 받을 정도로 선수 출신의 성공한 스포츠행정가다. / 위키피디아 |
# 일단 판세를 보면 당초 코와 사마란치 주니어가 양강으로 꼽혀왔습니다. 남자 육상 1500m에서 올림픽 2연패(1980, 1984년)를 달성한 코는 선수 출신에, 영국의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세계육상경기연맹 회장 등 정치인 및 스포츠행정가로 화려한 이력을 쌓았고, 친화력 또한 빼어납니다. 종신남작 작위를 갖고 있으며, 당연히 IOC의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영국의 앤 공주(75)와 가깝습니다.
육상연맹 회장으로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에게 상금을 줘 이슈를 일으켰는데, IOC위원장이 되면 모든 종목의 메달리스트에게 상금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약점은 70세 IOC위원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경력에 비해 다소 늦은 2020년에 IOC에 입성했다는 점입니다. 이에 코는 8년이 아닌 취임 4년 후 재선거를 치르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맞섰고, 또 IOC위원의 정년이 75세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위기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
IOC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사마란치 주니어의 사진. 친중 및 친러시아 인사로 분류된다. / IOC 홈페이지 |
# 사마란치 주니어는 제7대 IOC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사마란치는 1980년 자신이 스페인의 주소련대사로 근무했던 모스크바에서 IOC위원장으로 선출됐고, 2001년 역시 모스크바 총회에서 물러났는데, 사마란치 주니어는 같은 해 IOC위원이 됐습니다. 이것도 세습인가요?
'세울 코리아’(88 하계올림픽 개최지 발표)로 잘 알려진 아버지는 친한파로 유명했지만, 2001년 당시 2인자였던 한국의 고 김운용 IOC수석부위원장이 사마란치의 뜻에 거슬러 유색인종 최초로 IOC위원장에 도전하면서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이후 사마란치 주니어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러시아 및 라틴계의 두터운 지지를 형성했고, 특히 중국에 아버지 사마란치의 기념관을 세울 정도로 노골적인 친중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친화력이 좋고 IOC 내부 사정에 누구보다 정통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서구언론은 그를 ‘파시스트의 아들’로 정면 비판하기도 하죠. 아버지 사마란치는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시절 고위관료를 지냈고, 실제로 파시스트 경례를 한 사진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 |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가운데). 왼쪽이 고 김운용 IOC수석부위원장, 오른쪽은 윤강로 원장. /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
# 커벤트리는 가장 주목할 한 만한 후보입니다. 첫 여성, 첫 아프리카 출신, 최연소, 아프리카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수영, 금메달 2개 포함 총 7개) 등 일단 임팩트가 강합니다. 여기에 현 IOC위원장으로 지난 12년 동안 탁월한 리더십을 보인 토마스 바흐 현 위원장(독일)의 무한지지를 받고 있죠.
일부 국내 언론은 바흐 위원장이 프랑스의 라파르티앙 후보를 민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의 윤강로 원장은 "커벤트리 후보는 바흐 체제에서 핵심 IOC위원으로 성장했고, 그에 대한 바흐의 지지는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109명 IOC위원 중 76명이 바흐 위원장 시절 선출됐고, 특히 37명에 달하는 젊은 IOC위원들은 커벤트리 지지세가 강합니다. 이에 커벤트리는 당초 다크호스로 불렸으나 현재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 것입니다. 일부 외신은 "1차 투표에서 커벤트리가 당선될 수도 있다. 단, 1차투표에서 50%를 획득하지 못하면 2차 이후는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 |
선수 시절의 커벤트리. 여자 배영 200m에서 최고의 선수였고, 금메달 2개를 포함 총 7개의 메달을 딴 아프리카 최고의 올림피언이다. / IOC |
# 라파르티앙 회장, 엘리아쉬 회장, 후세인 왕자, 와타나베 회장 등 4명은 모두 당선권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단 엘리아쉬 회장은 스포츠용품업체 HEAD의 CEO 출신으로 막강한 재력을 갖췄고, 선거의 달인이라는 후문입니다.
또 김운용, 2013년 세르미안 능(싱가포르)과 우칭궈(대만)에 이어 4번째로 동양인 IOC위원장에 도전하는 와타나베는 하계올림픽의 5대륙 동시 개최, IOC의 상하원제 도입 등 이색공약으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참고로 IOC위원장 선거는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최하위 득표자를 탈락시키며 계속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 2023년 부산이 쓰라린 고배를 마신 세계엑스포의 경우, 국가별 투표가 이뤄지는 까닭에 사실 공식외교의 경연장입니다. 반면 IOC는 각국의 귀족이나 왕족, 재벌, 외교관,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이 모인 폐쇄적인 모임입니다. 공식외교채널의 파워와 꼭 일치하지 않습니다.
특히 현재 한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와 관련해서는 이번 IOC위원장 선거 후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IOC를 뒤흔든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뇌물 스캔들의 여파로 IOC는 개최지 선정 권한을 미래유치위원회와 집행위원회로 몰았습니다.
총회 투표가 있지만 상부의 소수 몇몇이 ‘우선협상 대상 도시’ 선정을 통해 사실상 개최지를 결정해왔습니다. 일반 IOC위원들의 역할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IOC위원장 후보들은 한결같이 위원들의 권한 강화 즉, 과거 방식의 위원들 투표로 바꾸려고 합니다. 당연히 IOC 내의 폭넒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합니다.
![]() |
전라북도가 지난 2월28일 서울을 꺾고 2036 하계올림픽 국내 후보도시로 선정되자 기뻐하고 있는 전북 관계자들. 전라북도는 오는 6월부터 2026년 사이 IOC에서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과 최종 개최지 선정을 놓고 경합을 벌인다. / 전라북도 홈페이지 |
# 윤강로 원장은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솔직히 현재 한국의 스포츠외교, 보다 좁은 의미로 IOC 외교는 오랫동안 공백 상태에 가깝습니다. 고 김운용 회장의 실각,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작고 이후 이렇다 할 포스트가 없습니다. NOC 자격, IF 자격의 IOC위원이나 선수위원은 엄밀히 말해 한계가 있습니다. 선수위원은 임기제(8년)이고, 단체장 자격은 해당 보직을 잃으며 자동적으로 IOC위원에서 밀려납니다. 한국의 경제력이나, 국가위상을 고려하면 개인자격 IOC위원은 1명 이상 있어야 합니다."
웬만한 분야 앞에 대문자 ‘K'를 붙이면 한류가 되는 세상. 한때 각종 스포츠이벤트 유치전에서 ’동방불패‘로 불릴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한국은 스포츠외교에서는 역으로 하락세를 보여왔습니다. 스포츠도, 올림픽도 한국은 확실한 세계 10위권의 강국입니다. 스포츠외교, 특히 IOC 무대에서도 한국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