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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외모보다 더 화려한 배구 인생을 보냈던 문성민, 코트와의 이별 순간까지도 ‘TEAM FIRST’였다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기자로서 선수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이어야 하지만, 이 기사만큼은 솔직해져야겠다.
40년 남짓 살아오면서 본 남자 중에 이 남자보다 잘 생긴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수습기자를 마친 뒤 스포츠부로 발령받고 처음 배구 시상식 취재에 참가했던 2012년 4월 어느날로 기억한다.
멀리서 그레이색 수트를 쫙 빼입은 남자가 걸어오는 데 같은 남자인 데도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흔히 ‘남자는 머리빨’이라고 하지만, 이 남자는 머리 스타일도 타지 않는다.
빡빡이 삭발을 해도, 투블럭컷을 해도, 머리를 길러 뒤로 넘겨도 한결 같았다.
수려한 외모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화려한 배구인생을 보냈던 현대캐피탈의 영원한 에이스이자 캡틴 문성민(39) 얘기다.

현대캐피탈과 OK저축은행의 2024~2025 V리그 남자부 6라운드 맞대결이 펼쳐진 20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은 온통 문성민이었다.
현대캐피탈의 G.O.A.T(Greatest Of All Time)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성민이 코트와 이별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캐피탈 블랑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도 팔뚝에 문성민의 등번호인 15번과 그의 이름 세 글자를 새겨넣고 경기에 임했다.

현대캐피탈이 세트 스코어 2-0으로 앞선 3세트, 19-18로 한 점 앞선 상황에서 문성민이 코트를 밟았다.
곧바로 그에게 공격 기회가 왔다.
세터 황승빈이 문성민에게 백토스를 올렸고, 문성민은 벼락같이 달려들어 상대 코트를 강타했다.
21-19에서도 또 한번 퀵오픈을 성공시켰다.
첫 득점은 크로스 코스로, 두 번째 득점은 스트레이트 코스로. 이 득점이 문성민이 현역에서 기록한 마지막 득점이었다.

24-23에서 문성민에게 서브 기회가 찾아왔다.
전성기 시절 외국인 선수들과 토종 선수들을 합쳐도 최강의 서브 능력을 자랑하는 문성민이기에, 은퇴 경기의 승리를 확정짓는 서브 득점이 나온다면 더욱 드라마틱할 법 했다.
그러나 문성민의 서브는 코트를 벗어났고, 25-24에서 허수봉의 서브 득점으로 이날 경기는 3-0으로 끝났다.
마치 문성민이 이어온 현대캐피탈 토종 에이스 계보를 물려받는 허수봉의 대관식처럼 느껴지는 서브득점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문성민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OK저축은행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면서도 연신 눈물을 훔쳤고, 이를 지켜보던 천안 유관순체육관의 팬들도 함께 울었다.
그렇게 한국배구와 현대캐피탈을 대표하는 거포 문성민의 현역 시절은 끝이 났다.

오랜 기간 현대캐피탈의 주장을 맡기도 했고, 정신적 지주 역할을 오래 해온 문성민은 떠나는 날까지도 팀이 먼저였다.
이미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해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해 있는 현대캐피탈이지만, 문성민은 “챔피언결정전에 출전하지 않겠다”며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은퇴 무대로 정했다.
2018~2019시즌 이후 6년 만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도전하는 팀에게 자신의 은퇴로 인한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문성민은 “구단에서는 큰 경기 때 은퇴식을 열어주고 싶어했지만, 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는 천안 팬분들게 하고 싶었다.
그게 제일 컸다”고 이유를 밝혔다.

경기 뒤 2700명의 천안 홈팬들은 유관순 체육관에 남아 문성민의 은퇴식을 함께 했다.
문성민에 대한 감사 영상 ‘Thank you mooni’를 시작으로 핸드프린팅 기념식과 영구결번식 그리고 은퇴사 순으로 진행됐다.
은퇴식 현장에는 문성민이 현대캐피탈에 입단했을 때인 2010~2011시즌 사령탑을 맡고 있던 김호철 감독(IBK기업은행)과 팀 선후배 사이에서 감독과 제자의 연까지 이어가며 현대캐피탈의 제2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최태웅 전 현대캐피탈 감독(SBS스포츠 해설위원), 여오현 IBK기업은행 수석코치를 비롯해 경기대 3인방으로 함께 했던 신영석(한국전력), 황동일, 박철우(KBSN해설위원), 곽승석(대한항공), 서재덕(한국전력) 노재욱(삼성화재) 등도 함께 했다.

문성민은 은퇴사로 “배구를 하면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최고의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선배들부터 시작해서 친구들 후배들까지 좋은 선수들을 만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래도록 즐겁게 배구를 했다고 생각한다”며 “처음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은퇴식까지도 많이 축하해줘서 과분하고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경기대 재학 중이던 2008년 독일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다 2010~2011시즌부터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문성민은 이번 시즌까지 15시즌째 현대캐피탈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원클럽맨’이었다.

빠른 발과 가공할 만한 점프력을 앞세운 타점으로 현대캐피탈을 넘어 V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했다.
최태웅 감독이 선수에서 사령탑으로 직행한 첫 시즌인 2015~2016시즌엔 아포짓 스파이커로서 후반기 18연승을 합작하며 그해 생애 첫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2016~2017시즌엔 정규리그 2위에 그쳤음에도 MVP 2연패와 더불어 챔프전 우승으로 챔프전 MVP까지 독식했다.
문성민의 배구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국가대표로도 반짝반짝 빛났다.
경기대 시절인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 문성민은 정든 코트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배구를 떠나지는 않은 계획이다.
그는 “일단 구단이랑 먼저 얘기해 보고 싶다.
시즌 끝나고 제대로 얘기할 거고, 배구 관련된 일이라면 일단 다 열어 두고 생각하겠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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