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4일 오전 11시22분. 이 한 마디가 대한민국 전역에 퍼졌다.
대다수 국민들이 제발 좀 내려오라고, 내려오라고 재촉했던 윤석열이 지난해 12월3일 불법 비상계엄 선포한지 122일만에, 지난해 12월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지 111일만에 대통령직에서 법에 의해 끌어내려졌다.
이제 다시금 대한민국은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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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배구여제’ 김연경이 코트와 영원히 이별하는 것을 의미했다.
대전으로 운전하는 내내 ‘만약 흥국생명이 이긴다면 어떤 기사를 써야할까?’라고 고민하다 문득 떠올랐다.
오전에 파면된 윤석열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김연경의 현재 상황이. 팬들은 30대 후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최정상급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 배구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가 코트를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연경은 스스로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이날 김연경이 우승 트로피와 함께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수상한다면, 국민 대다수가 제발 파면되라고 간절히 원했던 윤석열과 대비되는 더없이 드라마틱한 엔딩이 될 것 같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이런 사연을 담은 기사를 미리 준비했다.
데뷔하자마자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거머쥐었던 김연경의 서사를 주욱 써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원고지 매수로 25매의 ‘대서사시’가 완성됐다.
이제 남은 건 하나. 김연경과 흥국생명이 3차전만 이겨서 구체적인 수치만 적어넣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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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승으로 시리즈 분위기를 장악한 흥국생명 선수들의 몸놀림은 정관장을 압도했다.
김연경은 팬들이 그의 모습을 더 보고싶어하는 바람과는 달리, 시리즈를 길게 끌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는 듯 했다.
1세트부터 7점을 맹폭하며 쾌조의 컨디션을 뽐냈다.
1세트를 가볍게 잡아낸 흥국생명의 2세트는 다소 어려워졌다.
이대로 홈에서 흥국생명의 우승을 볼 수는 없다는 듯 정관장 선수들이 거칠게 저항했고, 승부는 듀스 접전으로 펼쳐졌다.
정관장은 메가, 흥국생명은 김연경, 두 팀이 꺼낼 수 있는 최고의 무기로 ‘쇼다운’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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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씩 주고받는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 되는 상황에서 뒷심이 한 수 앞선 것은 세계무대를 호령하며 최고의 아웃사이드 히터로 군림한 김연경이었다.
34-34에서 정윤주의 디그를 세터 이고은이 코트 바깥에서 어렵게 올렸다.
선수들이 가장 때리기 힘들다는 등 뒤에서 날아오는 오픈 토스. 그러나 김연경에겐 ‘누워서 떡 먹기’였다.
토스에 맞춰 정확히 뛰어올라 공을 강하게 내리쳤고, 정관장의 투 블로킹을 관통한 공은 정관장 코트에 떨어졌다.
35-34 세트 포인트. 또 한번 김연경이 나섰다.
이고은의 토스가 네트에 다소 붙었지만, 김연경은 이런 토스를 처리하는 데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선수. 상대 블로킹을 이용해 쑤욱 밀어넣었고, 또 한 번 공은 정관장 코트에 떨어졌다.
36-34. 흥국생명의 승리였다.
메가는 2세트에만 16점을 냈지만, 14점을 낸, 그 중 마지막 2점을 듀스를 끝내는 점수로 만든 김연경에게 ‘쇼다운’을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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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갑작스레 경기 양상이 변했다.
‘배수진’을 친 정관장 선수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한 세트라도 따내겠다는 마음으로 집중력이 극한까지 올랐다.
반면 이제 한 세트만 남겨놓은 흥국생명은 집중력을 다소 흐트러졌다.
이 조그만 틈이 이날 승부를 갈랐다.
3세트부터 정관장이 자랑하는 ‘전가의 보도’인 메가-부키리치의 ‘쌍포’가 불을 뿜었다.
1세트에 무릎 통증이 도져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염혜선의 토스는 정교하도고 알맞게 쌍포를 향해 올라갔고, 양 날개에 대한 상대의 견제가 심해지면 미들 블로커들의 속공으로 블로커들을 교란했다.
그렇게 흥국생명은 3세트를 잃고, 4세트도 졌다.
결국 승부는 결국 5세트까지 왔다.
5세트에서라도 이기면 흥국생명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고, (미리 써둔 기사도 휴지조각이 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미 분위기가 살아난 정관장을 제어할 수 없었다.
메가, 부키리치 콤비는 5세트에도 각각 6점, 5점을 내며 흥국생명 코트를 맹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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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성공률은 25%에 불과했고, 효율은 ?12.5%까지 떨어졌다.
정관장 블로킹과 수비도 이틀 전 5세트 패배를 잊지 않았다.
5세트에는 김연경에게 공이 몰린다는 것을 간파하고 집요하게 마크한 결과였다.
2세트까지 21점을 올렸던 김연경의 이날 최종 성적표는 블로킹 4개, 서브득점 1개 포함 29점, 공격 성공률 42.37%. 흠 잡을 데 없는 성적이었지만, 도합 71점을 합작한 메가(40점, 공격 성공률 46.91%), 부키리치(40.62%)를 막아낼 수 없었다.
경기 전 “저 역시 김연경 선수가 한 경기는 더 했으면 좋겠다.
이대로 김연경을 보내기 아쉽지 않은가. 팬들을 위해 한 경기는 더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라며 승리 의지를 슬쩍 피력했던 정관장 고희진 감독의 말대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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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스코어 2-0으로 앞서 있었지만, 이후 상황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다음 경기에는 이 부분이 좀 잘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2세트도 가져오긴 했지만, 좋은 배구가 아니었다.
2-0에서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하는 데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챔프전 같은 경우에는 어떤 팀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주는 경기가 없다.
저희가 채가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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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김연경은 6일 대전 충무체육관을 자신의 현역 마지막 무대로 만들 수 있을까. 만일 4차전마저 내준다면...2년 전 챔프전에서 도로공사에게 당했던 사상 초유의 ‘리버스 스윕’ 패배의 악몽이 스멀스멀 떠오를 수 있다.
대전=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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