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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가 V리그와 공식적인 첫 인연을 시작한 것은 2012~2013시즌 삼성화재의 외국인 선수로 뛴 것이지만, 사실 레오가 처음 V리그의 유니폼을 입을 뻔했던 팀은 현대캐피탈이었다.
레오는 쿠바 태생으로 2005년에 쿠바 주니어 대표팀에, 2009년부터는 쿠바 성인 대표팀까지 겸해서 뛸 정도로 ‘될 성 부른 떡잎’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청년가장이었던 레오에게 쿠바에서의 배구선수 생활은 그리 큰 돈이 되지 않았다.
결국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로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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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망명한 신분인 탓에 레오는 일정 기간 동안은 푸에르토리코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비자 문제로 현대캐피탈은 레오의 영입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주 제한이 풀린 뒤 레오는 러시아리그에 진출했고, 이때 삼성화재와 인연이 닿았다.
당시 삼성화재는 과거 대한항공에서 세 시즌간 뛴 적 있는 마이클 산체스를 영입하려 했으나 그의 몸값이 비싸서 협상이 결렬됐고, 그때 러시아 구단이 산체스 대신 임대를 권유한 선수가 바로 레오였다.
레오는 삼성화재에서 뛴 첫 시즌인 2012~2013시즌만 해도 임대 신분이었고, V리그 2년차인 2013~2014시즌에 삼성화재로 완전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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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의 V리그 2년차였던 2013~2014시즌에 현대캐피탈과 챔프전에서 맞붙었다.
당시 현대캐피탈의 외국인 선수는 아가메즈. 세계 배구에서의 명성은 아가메즈가 더 위였지만, V리그에서만큼은 레오가 ‘킹’이었다.
레오가 4경기에서 혼자 134점을 폭격하며 문성민(74점), 아가메즈(61점)의 쌍포를 압살하면서 삼성화재가 3승1패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화재에서 2014~2015시즌까지 세 시즌을 소화하고 V리그를 떠난 레오는 튀르키예, 레바논, 중국, 아랍에미리트 등 해외리그를 돌며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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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최대어로 평가받았고, OK저축은행의 1순위 지명을 받았다.
30대 초반의 나이가 되어 OK저축은행으로 돌아온 레오는 20대 초중반이었던 삼성화재 시절에 비해 타점이나 운동능력은 다소 떨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줄어든 타점을 상쇄할만한 노련함과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으로 여전히 V리그 최강의 외인으로 활약했다.
OK저축은행 3년차 시즌이었던 2023~2024시즌엔 홀로 팀 공격을 이끌다시피하며 2015~2016시즌 이후 OK저축은행의 8년 만의 챔프전 진출을 이끌었다.
챔프전 준우승을 이끈 레오였지만,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OK저축은행과의 재계약 결렬이었다.
2023~2024시즌에 OK저축은행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오기노 마사지(일본) 감독은 레오에게 의존하는 배구에 대해 거부감이 컸고, 자신이 추구하는 ‘범실 없는 배구’, ‘토털 배구’에는 레오가 맞지 않는 조각이라고 판단해 프런트의 강한 반대를 무릎쓰고 레오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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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를 얻기 위해 준수한 활약을 한 기존 외국인 선수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팀이 나오기도 했다.
레오를 품은 팀은 2023~2024시즌 4위였음에도 2순위 지명권을 품은 현대캐피탈이었다.
우승팀이었던 대한항공은 무려 3.57%의 낮은 확률을 뚫고 1순위 지명권을 얻었지만, 그들의 선택은 레오가 아닌 요스바니(쿠바)였다.
어쩌면 대한항공의 통합우승 5연패 좌절과 현대캐피탈의 구단 역사상 첫 트레블 및 19년 만의 통합우승은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결정됐을지도 모른다.
요스바니가 시즌 첫 2경기만 뛰고 어깨부상으로 이탈해 8주 간 공백을 가진데다 다시 돌아와서도 무릎 통증으로 시즌 막판 카일 러셀(미국)과 교체되며 전체 1순위다운 활약을 전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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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025시즌 들어 명실상부 토종 넘버원 공격수로 거듭난 허수봉과 함께 남자부 최강의 ‘쌍포’를 구축했다.
레오에게도 현대캐피탈은 V리그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행복배구’를 한 팀일지도 모른다.
삼성화재 3년, OK저축은행 3년 동안 최소 40% 이상, 최대 50%를 훌쩍 넘는 공격 점유율을 기록하며 혼자 팀 공격을 이끌어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캐피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허수봉이 있었고, 신펑(중국)과 전광인도 있었다.
게다가 황승빈은 양날개에만 의존하는 세터가 아니었다.
코트 가운데의 최민호, 정태준의 속공도 적극 활용할 수 있어 레오의 공격 점유율은 V리그에서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
점유율을 떨어졌지만, 기록은 여전히 최상위권이었다.
시즌 초반부터 독주하며 일찌감치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한 현대캐피탈. 정상의 무대에서 마주친 상대는 ‘숙적’ 대한항공이었다.
대한항공은 2020~2021시즌부터 2023~2024시즌까지 전인미답의 영역이었던 통합우승 4연패을 이루는 과정에서 현대캐피탈을 철저하게 눌렀던 ‘천적’이었다.
네 시즌 동안 정규리그에서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모두 5승1패씩, 총 20승4패로 밟았다.
2022~2023시즌엔 챔피언결정전에서 3전 전승으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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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시즌 전초전 격으로 열린 통영 KOVO컵 결승에서 대한항공을 풀 세트 접전 끝에 꺾었고, 정규리그에서도 5승1패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챔프전에서도 비슷했다.
단 한 경기도 내주지 않고 3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2022~2023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의 3전 전패의 아픔을 완벽히 되갚았다.
챔프전 3경기에서 69점을 몰아친 레오는 기자단 투표 결과 31표 중 23표를 휩쓸어 챔피언결정전 MVP에 올랐다.
삼성화재 시절인 2012~2013시즌, 2013~2014시즌 이후 개인 통산 세 번째 챔프전 MVP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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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블을 달성해 기쁘다.
현대캐피탈에 합류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건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우승 기쁨을 품고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챔프전 MVP에 대해 “마음에 드는 결과다.
시즌 중에 열심히 했지만 상을 받기보다 승리를 위해 열심히 했다.
챔프전 MVP는 기다려왔던 상이라서 의미가 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14일 열리는 V리그 시상식 때 발표되는 정규리그 MVP에 대해선 “시즌 MVP는 허수봉이 가져가도 괜찮다”며 챔프전 MVP에 만족한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에 허수봉은 “(정규리그) MVP는 주시면 받겠다”며 레오에게 화답했다.
레오의 재계약 가능성에 대해서도 둘이 기분 좋은 답변을 내놨다.
레오는 다음 시즌 현대캐피탈 잔류 가능성을 묻는 말에 인터뷰실 옆자리에 앉은 허수봉을 바라보며 “다른 데 안 갈 거니 걱정하지 말아라”라며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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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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