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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까지 맞아가며 뛰고 있다.
팀 입장에선 그저 코트 위에서 뛰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인데, 능수능란한 경기운영과 공격배분에 승부를 결정짓는 서브까지. 챔피언결정전의 ‘악역’을 자처했는데, 어느새 주인공이 되기 일보 직전까지 왔다.
정관장의 ‘염치기’, 세터 염혜선(35) 얘기다.
정관장은 6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의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2(25-20 24-26 36-34 22-25 15-12)로 승리했다.
인천 원정에서 1,2차전을 내주고, 3차전도 1,2세트를 내주며 챔프전 패배까지 딱 한 세트를 남겨둔 처지까지 몰렸던 정관장은 3차전 3,4,5세트를 내리잡으며 기사회생하더니 4차전마저 풀 세트 접전까지 승리했다.
시리즈 전적은 이제 2승2패. 이제 5차전만 이겨내면 2022~2023시즌에 사상 초유의 챔프전 ‘리버스 스윕’을 일궈낸 도로공사에 이어 두 번째 ‘리버스 스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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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구가 배출한 최고의 슈퍼스타가 챔프전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코트를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싶어하는 팬들이 많다.
이런 이유로 정관장이 ‘주연’ 김연경을 방해하는 ‘악역’, ‘빌런’ 느낌을 주는 시리즈다.
그러나 정관장이 위기 때마다 극한의 집중력으로 흥국생명의 발목을 잡으면서 기류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정관장의 ‘리버스 스윕’이라는 반전 드라마를 응원하는 팬들의 비중도 커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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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염혜선의 몸 상태는 봄 배구 초반부터 고장이 났다.
시즌 초반부터 안고 뛴 무릎 통증이 플레이오프에 이미 한 번 터졌다.
현대건설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 아예 코트를 밟지 못했다.
그 경기에서 정관장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0-3으로 완패했다.
이후 염혜선은 플레이오프 3차전을 시작으로 챔프전 4차전까지 모두 코트를 지키고 있다.
특히 3차전 1세트에 또 다시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지만, 이미 빠졌다가 다시 들어와 교체되면 남은 세트를 뛸 수도 없는 상황이라 토스도 못하고 코트만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염혜선의 투혼은 놀랍다.
3차전 2세트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주장 염혜선의 놀라운 투혼 속에 3차전을 잡아낸 정관장은 4차전을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마침내 역전 우승의 꿈을 이루기 일보 직전까지 왔다.
4차전도 염혜선의 활약은 눈부셨다.
특히 1세트에 상대 블로커들을 교란시키는 속공 활용이 기가 막혔다.
3세트에는 35-34 듀스 접전에서 세트를 가져오는 서브 에이스를 작렬시키기도 했다.
예리한 서브로 흥국생명 리시브 라인에서 가장 리시브가 약한 정윤주를 공략했고, 정윤주의 리시브는 코트 바깥으로 벗어나면서 3세트는 정관장의 차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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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주전 리베로 신연경을 무너뜨리는 서브에이스로 9-10을 만든 뒤 이후에도 네 번의 서브를 더 넣었다.
그 랠리에서 부키리치의 공격과 블로킹, 메가의 공격이 터지며 정관장이 12-10으로 승부를 뒤집었고, 결국 5세트를 잡아냈다.
이날 염혜선의 성적표는 서브 3득점 포함 7점. 공격으로도 4점을 냈다.
전위 포지션 때마다 상대 블로커와 수비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패스 페인트와 리시브가 길게 넘어왔을 때 농구의 리버스 레이업을 연상시키는, 백토스를 주는 척 하다 공을 그대로 네트 너머로 넘기는 패스 페인트도 인상적이었다.
3차전 승리 때도 “대전에서 축포가 터지는 것을 막아서 좋다”던 염혜선은 4차전 소감에서도 그 말이 먼저였다.
정호영, 메가와 함께 수훈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염혜선은 “대전에서 축포가 터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냈다.
이제는 진짜 기회가 동등해졌다.
지금의 우승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4차전을 앞두고 후배들과 ‘홈에서만 축포를 터뜨리지 못하게 하자’고,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져도 후회없이 하자’고 얘기했다.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모여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1일 미디어데이에서 ‘악역’이 되어보겠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던 염혜선은 “이제 어쩌면 주인공이 우리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역할이 바뀔 수도 있지 않나. 악역이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라고 우승을 향한 강한 열망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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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선은 현대건설 시절에 우승을 두 차례 경험했다.
입단 3년 차였던 2010~2011시즌과 2015~2016시즌에 주전세터로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너무 오래전에 우승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빨리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다”면서 “지금 우리 멤버면 충분히 우승한다.
물론 상대도 이기려는 마음이 있겠지만, 우리 역시 간절하다”고 말했다.
챔피언십 포인트 상황이 되면 누구에게 공을 올려주고 싶냐고 묻자 염혜선은 “제가 여기에서 얘기했다가 상대가 기사를 보고 그 선수를 막으면 어떡하죠? 그러니까 그때 공을 올려줄 사람은 비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인터뷰실을 떠났다.
대전=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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